[번역][논문/전문성] 섬유근육통 환자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들 :/반려질환 이야기 2023. 5. 3.

구글 Scholar에서 섬유근통증이라고 치고 뭔가 구미가 당기는 논문이나 글이 없는가 찾아보다가 발견한 글입니다. 섬근 환자로서 매우 공감가는 내용이 있고, 섬근 환자가 아닌 분들도 한 번쯤 우연찮게라도 읽어보시고 알아두시면 좋은 내용인 것 같아서 번역해 올려봅니다.

 

원문은 일본어로, 저자명 등은 제목 아래에 표기하였습니다.


섬유근육통(섬유근통증) 환자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 환자 상담을 통하여 알게된 것 ~

 

NPO법인 섬유근통증 환우회(JFSA:線維筋痛症友の会)

하시모토 유우코 (橋本裕子)  집필

(橋本, 2017, Comprehensive Medicine Vol.16 No.1)


요점

 섬유근육통 환자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 원인 중 하나는, 의료 현장에서는 시간이 없는 것. 또 한 가지는 의료자와 환자의 입장, 목표의 차이일 것이다. 환자는 한시라도 빨리 '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 '이번에야말로 이 의사는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강력하게 생각한다. '나을까, 평생 안 나을까' '특효약은 없는 걸까' '누구라면 고쳐줄 수 있을까' 등의 성급한 상담도 다수 들어온다. 환자의 마음으로서는 당연한 일일 테다. 견디기 힘든 통증과 불안, 빨리 직장에 복귀하지 않으면 실업자가 될 수도 있고, 장기간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곤란한 부분, 가족에게의 거리두기, 발증까지의 경위... 이야기하고 싶은 라이프 스토리가 잔뜩 쌓여있는 것이다. 이걸 풀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들어주는 사람의 여유있고 인내심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치료에는 장기간이 걸리는데, 우선 진득하게 치료를 시작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환자가 현실에서 직면하는 곤란한 일들이나 불안, 낫고 싶다는 고뇌의 마음을, 평상시의 전화 상담 내용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시작하며

 섬유근유통은 낫기 어려우나, 아주 조금도 좋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지만, 환자들은 커다란 불안과 조급함을 짊어지고 있다. 일이나 일상생활에 있어서, 또한 장래를 비관해서 혼란스러워 한다. 의사에게 전달하고 싶은 사항이 산더미만큼 많아, 몇 군데나 되는 의료 기관을 돌며 '알아 주는' 의사를 계속해서 찾곤 한다. 이야기를 많이 들어줬으면 하는데, 충분히 들어주지 않는다는 감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해받지 못한 것 같다고 느껴 의료 기관을 계속해서 옮겨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로 이해해주지 않은 것인가, 혹은 단순히 환자가 그렇게 느낀 것인가. 이것은 경시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의사의 어떠한 태도에 접했을 떄에 환자는 '이해해주었다' 또는 '이해해주지 않았다'라고 느끼는 것일까.

 환자 자신은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무엇이 가장 곤란한 것일까. 잘 정리를 하여 침착하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진료를 받기 전에 혹은 문진표 등으로 미리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환자들은 힘든 점을 잘 전달하는 요령도 숙지하였으면 한다. 그러나, 갑자기 말로 형용 못 할 통증이 덮쳐와 부조리의 한 가운데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환자에게, 그 점들을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의사가 '나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에는 환자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가 없다. 상호 의사 전달이란 어떤 경우에라도 어려운 것이지만, 불안과 절망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심정인 환자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쉬이 상상할 수 있다.

 

방법

 전화상담을 통해 얻은 경험에서 비롯하여, 환자의 상태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정리를 돕는다. 그러한 역할의 제3자가 필요하다. 환자가 전하고 싶어하는 점이 실은 환자의 이야기의 표면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설렁설렁 대충 임(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나아지는, 조금씩 좋아져가는 환자들도 늘고 있으나, 어떠한 점이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일까.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질환을 대하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를 탐구하고자 했다.

 

 우선, "섬유근육통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는 원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1) 질환 개념이 불명확하며 파악하기 어렵다.

가이드라인은 변경되었으며, 어느 범위까지 섬유근육통에 들어가는지가 불명확하다.

(2) 일반적인 검사로 이상(異常)이 검출되는 일이 없어 지표가 없다.

(3) 증상이 다채로워 같은 하나의 질환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4) 증상의 변동이 심하다.

(5) 또다른 배경 사정, 원인 등이 뒤섞여 질병에 깊숙히 관여되어 있다.

(6) 정신과 질환 등 타 질환과의 감별이 어렵다.

(7) 문제, 분쟁 등에 휩쓸릴 것 같다고 느끼기 쉽다.

 분명, 진단 기준이 있다 해도 지표가 없으면 진단을 할 수가 없다고 해도 되겠으나, 검사로 검출되지 않는 점, 지표가 없는 점, 증상이 다채로운 점, 변동이 심한 점 등이, 바로 섬유근육통 그 자체이다. 조금씩이지만 밝혀져가는 점도 있기에 연구 성과를 기다리고 싶지만, 환자의 전체상(像)을 잘 보고 진찰한다면 이해하기 쉬워지지 않을까.

 

입장차에 의한 마찰

 미스 커뮤니케이션은 입장의 차이에 의한 것이 많다. 의사는 사실은 도움이 되라고 조언한 것이, 절박한 환자에게는 실제 의도가 오해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의사) "편안히 쉬면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치료를 해나갑시다." → (환자) "쉬었다간 잘린다. 그런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증례 A : 30대, 남성. 어떤 수를 써도 일을 쉴 수는 없다, 쉬지 않아도 어떻게든 나을 수 있게 해달라고 꿋꿋하게 주장하곤 했다. '일을 못하면 수입이 끊긴다. 복귀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언제 완치되는 건지를 몰라서야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고 말하였다. 분명 맞는 말이긴 하나, 근무처에 상담을 요청하여 어느 정도 휴직할 수 있을지를 확인해보기를 요청했다. 그 결과 반 년간 휴직 허가를 받게 되어, 그 반 년을 어떻게 유효하게 치료에 사용할지, 재활 치료를 어떻게 실시할지 대화를 나눴다. 남성 A는 소년 축구 견학을 시작으로, 점점 그들과 함께 뛰어 다니게 되었다. 반 년 후에는 약물 치료에서 벗어나 직장에 복귀했다.

 증례 B : 60대, 여성. 의사에게 '만성 질환이니 천천히 이끌고 가봅시다' 라는 말을 듣자, '자신은 버려졌다. 나을 수 없는 병이니까 죽는 수밖에 없다'고 절망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의사는 계속 상태를 봐주고 도와주겠다,  감기라도 걸리면 병원에 오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완전히 낫지 못하더라도 '꽤 많이 좋아지는 것'을 목표로 하면 좋지 않을까,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는 정도가 된다면 어떨까 하며 이야기를 나눈 결과, 해당 의사를 주치의로 삼고, 성실히 치료를 받을 것을 결심하고 현재는 병 완화를 향해가고 있다.

 

치료 목표 설정 <섬유근육통이 낫는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의사와 환자 끼리는 치료 목표가 다른 경우가 있다. 의사는 우선 급성기에 있는 통증에 대처하며 삶의 질(QOL, Quality Of Life)을 개선하는 것을 고려한다. 한편 환자는, '바로 당장 완전히' 나을 수 있는 약은 없는지, 어느 의사라면 고쳐줄 수 있는지 등 성급한 호소를 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은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당연히 그런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잠깐. 원래대로 돌아가서, 현재까지 살아왔던 방식이나 일해왔던 방식으로 돌아가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스트레스로 꽉 찬 삶의 방식 때문에 고생이 쌓여서 병이 발증한 것은 아닐까. 이젠 정말 한계라고 몸도 마음도 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가버려도 좋은 걸까. 가치관, 삶의 방식을 재정비하지 않는다면 해결될 것이 없다는 점을 찬찬히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는 조급해한다

 '한시라도 빨리 이 통증에서 해방되고 싶다' → 강력한 약, 구급차 호출.

'온갖 병원을 다 다녀봤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 검사로 무엇도 나오지 않는 점에 의한 불안.

'여기서도 안되려나. 아님 여기서 마침내 밝혀지려나' → 불안과 기대가 섞여들어 한층 더 조급해짐.

'나을 수 있을까, 평생 안 나으려나' → 고민을 끌어안게 됨.

'특효약은 없나' → 오로지 약만 찾게 됨.

'누구라면 고쳐줄 수 있을까' → 전국을 돌아다니는 신세가 되고 맘.

이와 같이 조급해져있는 상태에서 (의사와 환자 간에) 마음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자주 발생하는 사례로는,

(의사) '검사했는데 아무 이상도 없으니까 안심해도 됩니다' → (환자) 역시 알아주질 않아.

'딱히 이상은 없으니까 통원할 필요 없습니다' → 방기(放棄)당했다, 오지 말라네.

'환자 스스로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 의사는 아무것도 안 하겠단 건가.  

'운동을 하세요' → 이렇게 아픈데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즐거운 일을 하세요' → 이렇게 절망스러운데 즐거운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서, 지금 제일 괴로운 곳이 어딘데요' → 전신이라고 분명 말 했을 텐데요.

 이와 같이 열거하자면 매우 복잡해지겠지만, 전인적(全人的) 의료의 입장에서 보면 납득이 간다. 환자는 인생 그 자체를 포함하여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체 일부의 아픔이 아니다. 증상 한 가지를 호소하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인생 전부, 환경도 인간 관계도 포함해서, 전부 다 통째로 '아프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자에게는 이 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환자 자신도 '통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섬유근육통 환자의 공통점

 섬유근육통에 걸린 환자들에게서는 어느 정도 공통점을 찾아볼 수가 있다. (Fig.1) 노력가, 숨가쁜 삶의 방식, '중간'이 없는 사고방식, 릴랙스를 잘 못하고, 병에 걸림으로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굳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째서 그렇게나 애써온 것일까, 일단 마음도 몸도 쉬게 할 수는 없는 걸까. 이제부터 어떻게 하고 싶은가에 대해서,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Fig.1 섬유근육통이 되기 쉬운 점/되기 어려운 점 : 오카 히로시 제작

 '릴랙스하세요' '어깨 힘 뺴세요'라고 해도, '릴랙스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힘을 뺀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건지를 모르겠다'라는 반응이 자주 돌아온다. 천천히 살아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던 그들에게는, 힘을 빼는 방법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병에 걸렸다고 살아가는 의미까지 잃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 의해 생겨나 몸에 깃든 가치관, 인생관을 다시 조정하는 것은 몹시 어렵다. 본인도 모르는 새에 자기 자신에게 정착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은 어쩌다 가치 기준을 외부로부터 가져온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사실을 깨닫는 경우도 없다. 타인에게 눈을 돌리는 게 가능하다면, 자기를 객관시하기 쉬워진다.

 증례 C : 40대, 여성. C 씨는 '최근 든 생각인데요, 제가 힘들 때가, 여러가지로 괴로운 일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더 시선이 가는 때 같아요. 제 인생이 끝날 때까지 잊지 않아야지 생각하고 있어요.'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면 괴롭기만 하지만, 다른 환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마음을 담아 작품을 손수 만들고 있다.

 

 회복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의료, 마음의 회복, 신체의 재활 이 세 가지 기둥이 밸런스를 맞추어 세워져야 한다. 그를 뒷받침하는 가족이나 사회적 환경, 경제 문제 또한 크다. 

 

생활 상의 어려움

 의료비의 부담, 경제적 문제는 환자에게 있어 커다란 걱정거리이다. 2016년 <FM 백서>에서는 환우회에서 실행한 환자 실태 조사가 정리되어 있다.

 의료비의 부담액이 월 1만엔 미만인 경우는 23%(2011년)→약 39%(2016년), 1만엔~2만엔이 34%(2011년)→약 25%(2016년), 2만엔~3만엔이 22%(2011년)→약 11%(2016년), 3만엔 이상이 16%(2011년)→약 10%(2016년)으로, 전체적인 의료비 부담은 약간 감소하고 있다. 보험치료의 선택지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사료된다. (Fig.2)

 의료비의 자기 부담이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단, 이것을 세대 전체에서의 지출로 바꾸어 보았을 때는, 역시 장기간에 걸친 의료비 부담은 가계의 큰 부담이 된다.

 총무청 통계국(일본국세도회 2016/17년판)의 <가계 조사>에 의하면, 2인 이상의 세대 1세대당 1개월간의 의료 보험비 지출은 12829엔(6인 이상인 세대)~13656엔(2인 세대) 범위에 속한다. 본 조사에서는 전체의 약 47%의 대상들이 1만엔 이상을 자기 부담액으로 내고 있다. 환자를 돌보고 있는 세대는, 해당 환자 한 사람분의 의료비만으로 세대 전체의 평균 의료비 부담을 초과하고 말았다.

 전체 금액은 약간 감소해도, <의료비의 부담감>의 '조금 부담스럽다''부담스럽다'라는 2항목의 합계는 약 47%(2011년)→약 49%(2016년)으로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Fig.3)

Fig.2  (월액)한 달 의료비 부담 금액   환우회 <FM백서 2016>에서
Fig.3  의료비의 부담감   환우회 <FM백서 2016>에서

 

「간접의료비」의 문제

 이번 조사에서는, 창구 부담 외의 방법으로 의료를 받았을 때 뒤따르는 비용을 간접 의료비라 지정하고, 그 내용이나 금액에 대해서도 조사하여, 263명(답변자 전체의 약 34%)의 답변을 받았다. 부담액은 월 1만엔 이내가 약 71%이었다.

 해당 내용은,

 - 택시비 등의 교통비

 - 멀리까지 통원하기 위한 숙박비

 - 휠체어, 보조기구, 기저귀 등 의료 복지 도구의 자비 구입 비용

 - 평상시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손난로나 냉각 시트 등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 부담이 가족의 생활을 압박하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가정 내에 설 자리가 없다' 등의 환자의 생각은, 이러한 현실로부터도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죽는 게 낫지 않을까, 가족들한테 민폐만 된다, 경제적 부담을 지워서 미안하다 등과 같은 생각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자살, 희사염려(希死念慮: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회원 3,430명 중 사망자 69명, 이 중 자살로 확정이 된 수는 41명(2016년 1월 환우회 통계)이었다. 사망자 중 59.4%가 자살이라는 사실은, 고통스럽고 어려운 현실이 닥쳐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사료된다. 혼마 미에코(本間三恵子) 교수의 셀프 케어 그룹의 참가자 면담 조사(2010)에서도 13명 중 8명에게 희사염려가 있었다.

 

병은 누가 고치는 것인가

 의사가 고칠 수 있는 부분, 약으로 나을 수 있는 부분, 스스로 고치는 부분, 이것들이 삼위일체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수월히 회복의 길로 향하기 어렵다. 누군가에게 고쳐 달라고만 하는(유명 명의, 특효약 내지는 신약 등) 태도를 견지하는 환자는 쉽사리 치료가 진행되지 않는다. 운동이 좋다, 기분 전환을 권장한다, 보람 있는 일을 발견하라 등 어떠한 조언을 들어도, 스스로 실행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증례 D : 40대, 여성. 온갖 것을 다 해봤다고 한다. '모 대학병원에서 인지 행동 요법도 받았다. 운동도 해봤다. 반려동물이 좋다고 해서 햄스터를 키워봤다. 해보라고 들은 건 전부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잠깐. 그건 약간 틀렸다. 

'하라고 한 것을 했다' 와 '자발적으로 해본 것'은 완전히 다른 게 아닐까. 그러나 여성 D는 '하란 대로 전부 다 해봤다. 이젠 방법이 없다.'고만 한다.

  자신의 신체, 삶의 방식, 장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 외에, 원인도 치료도 찾아다니고 있기만 해서는, (원하는 것을) 찾아낼 수 없다. '팀 의료 안에 환자도 들어있는걸요. 함께 나아가 봅시다.' '섬유근육통은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진 고리 안에서 고치는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회복을 향해서

 증례 E : 30대, 여성.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나, '약을 줄일 수 있게 되면 줄이자'고 이야기를 나누어 제대로 약을 복용한 결과, 2년 정도 걸려 약을 줄일 수 있었다. 지금은 성공적으로 가장 적은 양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 E는 불안감이 컸으나, 전화로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진정하는 방법'을 독자적으로 발견해갔다. '고통스러운 건 싫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이 조금 할 수 있게 되면서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됐다' '해낸 일에 좋은 말을 붙여간다' '화장실에 갈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등이라 말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절망하지 않게 되었다. 이 병을 체험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환우회에서의 인연으로, 사는 것,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견디는 힘이 붙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증례 F : 40대, 여성. 컨디션을 개선에 대해 친절하고 정중하게 조언해주는 의사를 신뢰하여, 약도 줄이고, 식사와 운동을 잘 하는 것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어떤 섬유근육통 관련 책과의 만남을 계기로, 나도 스스로 해보자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화내지 않아요. 화를 낸다는 건 사람을 상처입히고, 되돌아와 자기 자신도 상처입혀요. 그게 고통을 증폭시킨다는 걸 이젠 아니까요' 라고 말하였다. 일전에는 스니커를 구입하여, 걷는 것이 즐거워졌다고 한다. 1년 전에는 통원조차 할 수 없다고 상담을 요청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커다란 변화였다. 

 

맺는 말

 섬유근육통의 증상은 다양하나, 서서히라고는 해도 회복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Fig. 4, 5) 실제로 약물 복용 없이 직장으로 복귀하거나 결혼 및 출산에 성공한 환자도 많아지고 있다. 전인적 의료, 재활 치료, 둘러싼 환경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절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복수의 직업군에서 (치료를 위한)연계가 이루어지게 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환자가 증가한 만큼, 희망이나 바라는 점을 공유하며, 자신도 함께 치료 계획을 세워 나간다ー이러한 의료 형태가 점점 널리 퍼져가기를 소원한다.

 

Fig.4  섬유근육통 치료의 스텝(걸음마) : 오카 히로시 제작

 

 

Fig.5  내가 걸어온 길 : 동통(疼痛)심신의학회 심포지움    요시다 유우코 작(作) 2016


 

✱ 문헌 링크 (출처) : https://www.jstage.jst.go.jp/article/ifcm/16/1/16_33/_article/-char/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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